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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17세부터의 경제의 핵심을 알려주는 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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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17세부터의 경제의 핵심을 알려주는 책

피델리오 2021. 10. 19. 02:15

안녕하세요. 노력하고이야기하자입니다. 이 닉네임으로 바꾸고 나서 첫 게시글이고 오랜만에 올리는 게시글이기도 합니다.

닉네임을 바꾼 이유는 제가 어떠한 하루에 대해 온종일 '노력'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하루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저는 할말이 없더라고여....ㅠㅠ 그래서 마음을 다시 먹는 의미에서 닉네임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잡담은 그만하고 책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돈의 역사>는 '신사임당', '삼프로' 등 여러 유튜브에 출연하신 적이 있으신 '홍춘욱' 박사님의 저서입니다. 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의 특징은 '사건'과 '연결성'을 통해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연결성이란, '사건'과 '사건'의 연결성, 즉 개연성을 이야기합니다. 역.알.못의 말이지만, 개연성을 잘 설명해주신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건만으로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17세기부터 시작하여 1997년 IMF시기 까지의 사건들을 설명해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끼워넣고 싶은 사건들도 몇 가지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건들이 책에 나와있는 모든 사건이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ㅎㅎ

 

17세기 -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활동하던 시기

**1602년 1.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최초의 주식회사)' 설립

**1609년 1. 암스테르담 중앙 은행(지급준비금 100%, 대출기능x) 출범

*1630년 1. 튤립 파동

*1659년 1. 스웨덴 정부의 'Riks Bank(암스테르담 중앙은행의 단점을 어느정도 보완, 대출기능o)'

*1685년 1. 청나라의 강희제가 해상사무역을 합법화(주요 연안 항구에 해관 설치)

**1688년 1. 영국 명예혁명 발발(명예혁명 이전의 국채금리는 10% 초과하였고 왕실의 채무불이행도 빈번했다고 함. 명예혁명 이후 국채금리가 크게 하락함.) -> 제임스 2세가 쫒겨나고 윌리엄 3세가 국왕으로 임명됨. 이때 당시 윌리엄 3세가 들어올 때 네덜란드 식 금융제도와 수만명의 기술자와 금융인력을 데려옴.

(영국이 세계 정세의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것에 관해 이 혁명에 주목함[더글라스 노스&베리 와인개스트])

 

**1694년 1..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등장(정부에 대한 대출을 대가로 '화페 발행권'을 부여 받음)

*1775년 - 1783년 1.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가 90억 리브르를 지원, 1783년 '파리 조약'으로 평화협정을 맺고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 

*1789년 1. 프랑스 혁명(혁명의 계기가 된 '삼부회 소집' 또한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함이었음. 프랑스 왕실은 오랫 동안 채무불이행을 지속해옴(1559년-1788년))

*1792년 1. 영국의 영구채 발행(이 당시 영국은 신뢰할 수 있는 자산시장의 분위기를 형성하였음. 그 결과 전 세계 부자들이 투자를 하기 시작함)

**1793년 - 1815년 1. 대 프랑스 동맹기간(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막기위한 영국 중심의 군사동맹) ->

1800년 경의 영국은 '인구'와 '소득'이 동반 상승하던 시기였음. 이에 대해 많은 가설[1. 입지 2. 제도(저자는 이쪽 편)]이 존재한다. 이 당시 런던의 인건비는 계속 높아졌는데, 북미 신민지로 인해 인구압이 완화되었던 것이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이 당시 일본도 진보되어있는데, 산업혁명이 왜 일어나지 않았냐?에 대해서는 '인구과잉'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영국은 '수확체감'이 발생하였지만, 일본은 반대되는 '수확체증'(근면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가장 먼저 제도적으로 진보되있던 네덜란드는 왜 발전하지 못했는가?이에 대한 대답은 네덜란드는 '육지에 터전'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추가로, 18세기 말 나폴레옹한테 점령당해서 산업혁명을 추진할 힘을 잃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영국만의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전통'과 '전화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지식인과 자본'의 영향 또한 무시못한다.

 

*1808년 - 1814년 1. 반도전쟁(나폴레옹의 이베리아 반도 침략에 저항하여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이 동맹하여 벌인 전쟁, 1812년 '살라망가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음. 1813년 결국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완패하고 나폴레옹 군사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함.) ->

**1820년 - 1850년 1. 미국식 제조 시스템의 개발(영국 산업혁명의 성과를 빠르게 수용한 결과, 북동부 쪽의 제조업자들로 인해 북부의 생산력이 크게 올라감) 2. 1801년 - 1826년 이때 당시 중국이 아편으로 막대한 '은'의 유출이 있었음. 이로인해 영국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수익을 얻음.

 

*1860년 - 1865년 1. 미국 남북전쟁(남부 : 노예제 중심(농사 위주), 북부 : 제조업 중심 -> 그 결과, 북부의 승리로 끝남.)

*1879년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해

*1913년 1. 영국주도의 평화를 누리던 시기, 금 보유 순위는 미국 > 프랑스 > 영국이었지만, 영국은 세계 금융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음. 기축통화로써의 이권 또한 누렸음.

 

*1914년 - 1918년 1. 제 1차 세계대전

전쟁 채권 발행, 정부에게 빌려준 돈은 다시 시장에 풀릴 수 밖에 없었고 사실상 금본위제가 폐지된 상황이 발생하였음. 대중들이 이 사실을 몰랐지만, 알게 될 시 귀금속을 보유하기 위한 행동 가능성이 매우 올라가는 상황

 

1921년 - 1922년 전쟁이 끝나고, 패전국인 독일에게 승전국이 1,320억 금 마르크라는 배상금을 부과했다. 독일은 결국 '통화 증발(금이 없어도 화폐를 계속 발행)'을 선택하였고, 엄청난 인플레로 가격이 고정된 모든 것의 실질가치가 하락, 고정적인 연금 수입 생활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음. 독일정부의 채권 보유자 또한 마찬가지로 막대한 피해를 입음. 그에 반해, 토지나 공장 등 실물자산 또는 빚을 진 이들은 매우 이득(기업 & 정부가 결국 승자의 위치에 서버림)을 보았다.

 

이 방법이 통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잘 몰랐고 가격이 매우 경직적인 시대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환율 상승 -> 수입 물가 -> 전체 물가   상승이 일어남.

1920년 이후의 독일은 월간 기준으로 50%의 물가 상승이 발생함. (참고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인플레를 겪음)

 

*1927년 미국이 영국을 돕기 위해 갖고 있던 금 영란은행에 공급 +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미국 금리 인하+통화량 상승 -> 거품 형성

*1928년 거품을 끄기 위해 '이자율 인상'을 하였지만, 금본위제로 인한 고정환율제도로 금리 인상 -> 환율 고정으로 단나라에 비해 투자 매력도 상승 -> 해외 자본의 투입 증가

 

**1929년 - 1933년 세계 대공황 및 디플레이션의 발생 *

1929년 미국은 번영기를 누리던 중이었고, 공장의 수는 증가하고 주가 또한 오르고 있었음 하지만, 호황기 속 레버리지 투자가 급격히 상승함(1924년 22.3억 달러 ->1929년 85억 달러)

1929년 8월 6p까지 금리 인상, 이에 따라 단기 금리도 급등하였고 이로 인해 공황(청산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것도 한몫함)이 발생. 금리 인상은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금본위제' 때문이라고 한다.(소비 증가 -> 수입 증가 -> 무역수지 하락 -> 금 유출 증가 -> 통화량 하락 -> 금리 증가)

 

*1933년 금본위제 폐지 후 금리 인하(7p -> 4p), 금융개혁 시작

*1939년 1929년 수즌의 가처분 소득 회복 &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1939년 - 1945년)

*1944년 고정환율제도로의 회귀 하지만, 완전한 금본위제는 아니였음.

*1960년 미국과 패전국의 GDP가 비슷해졌는데, 달러가 고평가 되있어서 미국 내에서 수입상품의 매력도가 컸고 점차 달러의 가치는 내려감.

**1971년 닉슨 쇼크(금과 달러의 교환 정지 이후 인플레이션 발생(화폐를 버리고 실물자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함))

시기 1971 1980
온스 당 금 가격 35달러 586달러 (이후 20년 동안 기나긴 하락)

*1980년 연준 총재인 볼커가 인플레 안정을 위해 '정책금리를 20p'로 끌어오림(당시 물가 상승률 14% + 10년 째 지속되는 인플레로 미국경제와 달러 신뢰도가 바닥).

*1981년 고금리 정책 이때까지 지속

*1983년 물가 상승률 2.36%, 금리 3.6%

*1985년 플라자 합의(엔교 불황 발생, 미국 호황)

*1987년 블랙 먼데이 발생

1987년 9월 금리 5.5p -> 6p 인상, 방아쇠 역하(대중이 연준의 의도와 다른 의미를 해석) + '포트폴리오 보험'으로 인해 상황 확대(선물 매도 공세 = 악순환 발생) 1987년 말 안정을 되찾음.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통화를 넉넉히 풀고 금리 인하할 것이라고 선포

*1997년 IMF 구제금융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대공황

**2020년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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